이번 포스트는 완도 청해진 장보고 유적지입니다. 다녀오기는 1년 전인 2021년 5월 초에 다녀온 곳인데 사진은 뒤늦게 올리네요.
원래 이 청해진 유적은 하루에 두 번(한 번인 경우가 대략 한 달에 한번 있습니다) 열리는 바닷길로 육지와 연결되는 반 육계도의 형태인데 이 시간이 매일 조금씩 변하다 보니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걸어서 들어갈 수 없는 불편함이 상당했습니다. 반대로 들어간 사람이 너무 오래 있다가 물때를 놓쳐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요(10시간 이상 강제 감금당하는 셈이죠) 이런 불편함 때문에 접근성을 개선하려고 나무로 된 다리(목교)를 놓아 물때와 관계없이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그 다리 중간쯤에서 찍은 사진이고요.
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 바로 앞에 이렇게 우물이 숨어있습니다. 보통 성 내부에 우물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걸 생각하면 여기는 특이하게도 우물이 성 바깥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서 밖에서는 우물이 보이지 않게 옹성을 쳐서 우물을 보호하는 형식을 갖춘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애초에 섬 지형상 우물 자리가 저기이긴 한데 성벽을 치기는 좀 애매한 위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아무튼 우물 사진 바로 위의 사진이 바로 성 바깥에서 찍은 사진인데요, 성 바깥쪽에서 보면 우물을 둘러싼 옹성이 옹성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평평한 평지로 바로 연결되는 착각이 듭니다.
참고로 고고학 발굴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저런 우물은 거의 보물창고나 다름없다고 하더군요. 처음 우물을 파면서 만들었던 제례관련 도구부터 시작해서(제물로 바친 동물뼈, 심지어 사람 뼈가 튀어나온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우물을 사용할 때 실수로 우물에 빠뜨린 물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저런 우물이나 연못 같은 곳만 잘 파내도 생활유물들로 당시 연대를 알기 쉽습니다. 거기다 우물이 있던 자리의 토양이 대부분 뻘층으로 된 경우가 많아 보존상태가 좋은 경우도 많죠
우물 뒤편의 입구 모습입니다. 옹성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아래에서 입구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경사와 단을 두어서 방어력을 보강한 형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기 계단 옆에 단을 둔 곳에 목책같은걸 설치해 두면 소형 성벽 역할을 충분히 더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네요.
청해진 성곽의 구조는 성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내성을 설치하여 날일(日)자 형태의 이중 성곽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마 지휘부는 저기 내성 안쪽의 가장 높은 곳 부근에 자리하였을 것이고, 이쪽은 실제 병력의 주둔지로 사용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대 위치에서 입구 방향으로 바라보면 경사가 상당합니다. 만일 청해진을 정면에서 공략하려고 한다면 저기 바다를 물때를 맞춰 건넌 다음에 옹성과 성문을 뚫고 다시 저렇게 보이는 경사진 길을 달려 올라와서 저 사진을 찍은 장대 아래에 있는 중성을 한번 더 뚫어고 다시 장대까지 열심히 뛰어올라가야 하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데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고 보입니다.
덤으로 이제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드는 생각인데 저기 다리 건너편의 숲이 있는 곳도 청해진에 딸린 보루같은 성곽유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높이도 적당하고 성을 두기 좋은 자리인 데다, 언덕 둘레에 석축이 있는 양식이 영락없는 성곽의 형태를 하고 있었거든요.(그냥 개인적인 추정일 뿐입니다)
위 사진은 청해진 가장 높은 곳 부근에 있는 건물터입니다. 굴립주(堀立柱)라는 설명이 붙어있는데요, 땅을 파서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경주같이 좀 큰 도시나 사찰의 건물터를 가서 보면 주춧돌 위에 기둥을 올리는 방식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쪽은 주춧돌 없이 땅을 파고 바로 기둥을 올린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건물이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모양도 알기는 어렵지만 위치상 주변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고지대에 있는 건물터인 만큼 전체 지휘소인 내성의 장대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위 건물은 완도 장좌리 당제와 당굿을 하는 사당입니다. 정월 보름에 당굿을 하며, 모시는 신은 장보고, 송징 1, 정년 2, 혜일대사 3 이렇게 넷이라고 합니다. 4
치(雉)는 일직선으로 뻗은 성벽에 돌출부를 낸 것인데 여기서는 토성의 형태에서 볼 수 있는 치가 5군데(옹성의 치 포함) 있습니다.
바다 가운데 뭔가 잔뜩 서 있는 게 청해진 수중 목책(해안 원목렬)입니다. 장도 일대가 청해진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요 유적 중 하나로 발굴 당시 확인된 전체 길이만 331m에 달할 정도로 길며, 장도 쪽으로 접근하는 선박의 해로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완도 청해진 유적지는 1984년에 사적 제308호로 지정된 곳으로 전체 성 둘레는 890m가량으로 판축기법에 의한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며, 섬 주변의 석축, 석렬 유구와 목책렬 등의 형태로 당시 해안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과 항만 축조 시설에 대한 형태를 알 수 있는 힌트를 주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무엇보다도 위에 나왔던 우물에 의식용으로 매납한 매납유물과, 그 외 생활유물 등이 다수 발굴되었으며, 청해진이 설치된 시기가 9세기 중반으로 딱 한정된 시기였는데 이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유물이 대량으로 나온 덕분에 여기서 나온 유물들이 곧 9세기 중반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표지유물(화석으로 치면 표준화석쯤 되겠네요)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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